(전편 계속) '여기가 분명히 맞을 텐데.

(전편 계속) '여기가 분명히 맞을 텐데. 아무도 안 보이네.' 이메일로 온 교환학생 안내서를 다시 확인해봤다. '오후 4시. 공항에서 마스트리트로 출발하는 셔틀이 있음. 미팅 포인트에서 기다리면 픽업해주겠음

2020. 08. 28·published i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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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계속) ‘여기가 분명히 맞을 텐데. 아무도 안 보이네.’ 이메일로 온 교환학생 안내서를 다시 확인해봤다. ‘오후 4시. 공항에서 마스트리트로 출발하는 셔틀이 있음. 미팅 포인트에서 기다리면 픽업해주겠음’

시계를 보니 이미 4시가 살짝 지나있었다. ‘이거 내가 뭔가 잘 못 안 건가?’ ‘날짜가 잘 못되었나?’ ‘이미 떠나버렸나?’ 찰나에 걱정이 스쳐지나갔다.

순간 더 이상 ‘한국어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덜컥 실감이 났다. 쫄렸다. 비행기 탔을 때도, 암스테르담을 돌아다닐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부턴 관광이 아니었다. 이름 모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먼 나라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아직 휴대폰도 없었다. 갑자기 길 잃은 초딩이 된 느낌이었다.

4시 30분쯤 되자, 나는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봤다. 나 말고도 몇 명의 교환학생이 픽업 셔틀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사람 하나쯤 들어갈만한 거대한 캐리어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라. 걔네들도 기다리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말을 걸어볼까. 누군가 개통된 폰이 있어서 학교 사무실에 전화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자 머릿속 한 구석에서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쟤네가 내가 가는 학교 학생이 아니면 어떡해. 말 걸었다가 아니면 겁나 쪽팔려.’

나는 쭈뼛거렸다. 목소리는 계속됐다. ‘게다가 너 뭐라고 물어볼건데? 영어로 뭐라고 해야 이 상황에 자연스럽지? 영어 못 하는 사람 티나지 않나?’ 글로 써보니 상당히 웃기는 걱정이다. 그치만 당시엔 나를 망설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말을 걸까 말까. 어색했다.

결국 난 말을 걸었다. ‘Hey, Are you going to Maastricht?’ 그 친구는 그렇다고 답했다. 내가 말을 걸어준 것에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나는 셔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확인해봐야겠다고 말을 이어갔다.

‘오케이, 어렵지 않네?’ 나는 주변에 큰 캐리어들에게 한 명씩 다가갔다. 다들 나와 같이 픽업 셔틀을 기다리는 학생이었다. 다들 한 쪽으로 모이게 했다. ‘내가 통화가 안 되어서 그런데, 누가 여기 나와있는 학교 번호로 전화 걸어볼 사람?’ 하고 물었다.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여학생이 자기가 해보겠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학교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다. 픽업 셔틀을 보내지 않았다. 우리는 직접 기차를 타고 마스트리트에 가기로 했다. 마스트리트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같이 앉은 친구들과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하고, 너는 어떤 대학이냐 등등 얘기를 했다.

2시간정도 걸려서 마스트리트에 도착했다. 마스트리트는 아담하고 조용한 도시였다. 가게에 네온사인이 하나도 없는 게 낯설었다. 기차역에서 게스트하우스까지 도착하는 데 또 30분이 걸렸다. 드르륵드르륵. 캐리어 끄는 소리가 지겨워질 때쯤 임시 방에 입성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에 쓰러졌다. 육체적으로도 피곤했지만, 정신적으로도 피곤했다. 모든 게 익숙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계속 ‘조심해!’ ‘불안해!’ ‘하지마!’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애써 무시하며 발을 옮기고 길을 찾는 건 상당히 지치는 일이었다.

어느새 밖이 어두웠다. 아직 학기가 시작하기 일주일 전이다. 일찍 온 탓인지 게스트하우스는 텅텅 비어있었다. 사람 없는 바깥 풍경이 을씨년스러웠다. 갑자기 내가 여기 있다는 상황이 너무나 어색했다. 막막했다. 뭐야, 침대엔 배게도 없네.

내 인생에서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몇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맥북을 꺼냈다. 에버노트를 열고. ‘앞으로 지낼 게스트하우스의 방에 도착했다. 외롭다. 집에 가고 싶어진다’라고 적었다. (진짜임) 그 첫 주가 교환학생 중에서 가장 마음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물론 그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일주일 뒤, 나는 조금 더 기분이 나아져 있었다. 마트도 어디있는지 알게 되었고, 빨래도 해봤고, 학교도 한 번 둘러보고 왔다. 아는 것들이 많아지니 좀 적응한 기분이었다. 내일은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이다. 본격적으로 학교 생활이 시작된다. (계속)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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