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게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게 있다. 내 주변 사람이 솔직하게 말하는 걸 어려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꼭 소심한 사람이 아니라도 그렇다. 평소 팩트 폭력이 버릇인 사람도, 어떤 상황이나 사안에선 다르게 행동한다. 눈치만 보내고 알아봐 주길 기다릴 수 있다.

2020. 03. 19·published i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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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게 있다. 내 주변 사람이 솔직하게 말하는 걸 어려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꼭 소심한 사람이 아니라도 그렇다. 평소 팩트 폭력이 버릇인 사람도, 어떤 상황이나 사안에선 다르게 행동한다. 눈치만 보내고 알아봐 주길 기다릴 수 있다.

예를 들면, 친구들한텐 거침없는 신입사원도 부장님한텐 솔직하게 말하기 어렵다. 평소 돈 다 내던 사람이 갑자기 돈 좀 나눠 내자고 하는 거 어렵다. 말은 쉽지만, 상당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주변 사람과 갈등이 있을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난 너한테 이런 게 힘들었어.‘라고 말한다. 대부분 ‘자신이 그걸 돌려서 표현했는데 너는 전혀 모르더라’라는 얘기를 덧붙인다. 지금 글 쓰면서 깨달은 건데, 고등학교 이래로 그런 사건이 ‘늘’ 있었다. (소름)

그 말을 들으면 깜짝 놀란다. 진짜로 평소 그런 고민을 안 해봤기 때문이다. 솔직히 난 사회적 눈치/센스 측면에서 단세포 생물에 가깝다. (외삼촌과 외할아버지를 보면 분명히 외가에서 물려받은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세포 생물이 상상조차 못하는 고민과 괴로움이 있다.

그때마다 ‘왜 말 안 했어, 난 몰랐지….’라고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서 인정하건대, 나는 그 말을 하면서도 반반이었다. 반쯤은 진심이었고, 반쯤은 거부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자아를 보호하고 싶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으면 당연히 모른다’고 합리화했다. ‘내가 눈치가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게 잘못한 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결국 한순간은 나아지다가,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했다. 그렇다. 난 쓰레기였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게 맞는 말일 수 있지만 ‘말하지 않았으니까 몰라도 돼’는 아닌 것 같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도 돼”라고 포기하면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난 한국에 산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아니면 적어도 상처는 주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한국에 있다. 정말 포기하고 싶으면 모든 사람이 나처럼 둔하거나, 100% 솔직하게 말하는 나라에 가서 살아야 한다. (그런 나라가 있을까?)

그러니까 내가 신경 써야 할 사람이 솔직하게 말하는 걸 어려워한다면, 눈치껏 알아채고,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반성문 끝.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