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이맘 땐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었다.
1년 전 이맘 땐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었다. 일을 열심히는 하는데 이게 맞나 싶었다. 디콘 정식 직원이 조금씩 늘어갈 때마다 부담감이 심해졌다. 누군가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나조차도 당장 이 회사가 살아남을지 확신이 없는데, 이 사람들은 자기 삶의 일부를 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마다 목이 콱 막혀왔다. 수주한 프로젝트가
1년 전 이맘 땐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었다. 일을 열심히는 하는데 이게 맞나 싶었다. 디콘 정식 직원이 조금씩 늘어갈 때마다 부담감이 심해졌다. 누군가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나조차도 당장 이 회사가 살아남을지 확신이 없는데, 이 사람들은 자기 삶의 일부를 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마다 목이 콱 막혀왔다. 수주한 프로젝트가 무산될 때면 먹을 게 잘 안 넘어갔다. 머릿속은 카오스였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이거다 싶은 돌파구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죽상을 하고 있자,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물으셨다. 이러저러해서 고민이 많다. 어디 산속에 틀어박혀서 좀 쉬고 싶다고 징징거렸다. 엄마가 명상 캠프에 갔다오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깊은 산속에 있는 수련원 같은 곳인데 열흘 동안 들어가 속세와 단절되어 명상을 하고 온다는 거였다. 엄마도 우근이 진단받고 힘들 때 도움이 되었다고.
명상 캠프라니? 뭔가 신비주의적인 느낌이다. 보통 때라면 냉소를 날리며 사양했을 거다. 근데 그 때는 완전 솔깃했다. 검색을 해봤다. 잘 나오지 않았지만 간신히 다음 카페를 찾았다. ‘마음닦기 일정 알립니다’라는 공지가 있었다. 1주일 뒤면 2월 프로그램이 시작된다는 걸 알았다. 충동적으로 신청을 눌렀다. 회사에 주말 포함 5일 휴가를 냈다.
충북 보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보은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다시 군내 버스를 타야했다. 배차 간격이 2시간이었다. 하루에 4번 운행하는 버스였다. 얼마나 산골짜기인걸까. 터미널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대합실엔 할머니 몇 분이 장바구니를 들고 앉아 계셨다. 매표 직원은 지루해하며 핸드폰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옆에는 허름한 매점이 하나 있었다. 한산한 시골 터미널이었다.
군내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갔다. 카페에 올라와있던 ‘오시는 길’에 써있는 곳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 이름도 없었다. 내린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여기서 20분을 더 걸어들어가야 했다. 진짜 산 속은 제대로 산 속이구나.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길 주위는 다 산이었고 인기척도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풍경 전체에 음소거를 건 것 같았다. 나만 드르륵드르륵 캐리어 소리를 내며 그 정적을 깨고 있었다. 그 순간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 웃겼다. 기록이나 해두자 싶어 사진을 찍었다.
수련원에 도착했다. 순간 제대로 온 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한참 뒤 내 소리를 듣고 선생님이 나와서 맞아주셨다. 아궁이에 장작을 때고 있었다면서. 내 이름을 묻고 종이에 체크 표시를 하셨다. 목록에는 10명 정도 이름이 쓰여있었다. 숙소로 안내해주셨다. 딱 한 사람이 누울만한 독방이었다. 짐을 풀고 ‘나 도착했음’ 카톡을 했다. 폰을 껐다. 그렇게 명상 캠프 1일차가 시작됐다.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