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교환학생 썰 2편.
네덜란드 교환학생 썰 2편.
네덜란드 교환학생 썰 2편. 개강이 가까워져 학생들이 거의 다 입주했다. 부엌이나 거실에서 마주치면 이란 대화가 오갔다. “어, 안녕? 지금 왔어?” “ㅇㅇ 나 방금 도착.” “반가워 난 504호 살아” “나는 509호야” “아 근데 우리 단톡방 있음. 페북 아이디 뭐야 내가 초대해줄게” 그렇게 페북 메신저방에 모두 모였다.
다같이 저녁이라도 한번 먹자해서 날을 잡았다. 그게 2017년 2월 14일이었다. 그 며칠 전 갑자기 다른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우리의 이탈리안 보이 크리스티앙이 남자들만 초대해 방을 만들었던 것이다.
크리스티앙은 “애들아 우리 저녁먹기로 한 날이 발렌타인 데이였어! 이럴 수가.. 우리 남자들이 뭔가 반드시 준비를 해야돼!” 이런 말을 했다. 웃긴 건 크리스티앙 혼자서만 흥분했다는 거다. 다른 애들은 ‘아 그래?’ ‘뭐할건데’ 같은 시큰둥한 반응이었고, 반절은 읽씹이었다 😅 (아직 다들 어색했다. 입학 예정인 새내기 동기단톡방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나 크리스티앙은 불굴의 의지로 이벤트를 기획했다. 꽃을 하나씩 선물한다. 그런데 그냥 주는 게 아니다. 다같이 저녁을 먹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밖에 꽃을 몰래 준비해뒀다가 서프라이즈로 준다. 그것도 남자 1명당 여자 1명을 정해서, 일대일(!)로 건네줘야 한다. 엄청난 디테일의 기획이었다.
크리스티앙은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역할 분배를 했다. 나는 ‘진짜 대단하네 낭만이 넘친다’ 싶으면서 동시에 ‘귀찮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보는 애들이고 어색한 사인데, 일대일로 꽃 건네주기는.. 좀 오버 아닌가?
하지만 딱히 반대할 명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얼떨결에 꽃 구매를 담당했다. 3번 사진은 내가 꽃 가게에 가서 크리스티앙한테 ‘야 이거 사면 돼?’ 하면서 보낸 거다.😂
크리스티앙은 장미로 하는 것이 도리에 맞으나 우리는 아직 친하지 않아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여기가 네덜란드임을 고려해서 튤립 정도가 좋겠다.. 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거의 증조할아버지한테 제사 절차 지도받는 느낌.
당일이 되었다. 다들 준비해온 음식과 술을 맛있게 먹었다. 갑자기 크리스티앙이 거실을 돌아다니면서 (겁나 티나게) 남자들에게 귓속말을 했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하나 둘씩 나가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던 차에, 크리스티앙의 지휘 아래 남자들이 일사불란하게 꽃을 들고 들어오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여자애들이 꽃을 받고 보인 반응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솔직히 ‘이걸 이렇게 좋아한다고?’ 🤔싶었다. 근데 꽃 + 분위기 + 준비한 티 이런 게 다 어우러져서 감동을 준 것 같았다. 너무 좋아하면서 사진을 1시간 동안 찍는 애들과, 의기양양한 표정의 크리스티앙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아.. 이게 아벨라~의 나라 이탈리아의 힘이구나” 크리스티앙이 오바한다고 생각했던 어제의 나를 반성했다. 그 후로 이탈리아 남자의 ‘여자가 뭘 좋아하는지 파악하는 능력’은 강하게 리스펙하게 되었다는 그런 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