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서 회의실에 들어왔다.
아침에 출근해서 회의실에 들어왔다. 유리에 붙어있는 시트지에 눈길이 갔다. 저 시트지에는 아주 고의적으로 가느다란 홈이 나있다. 완전히 가리지도, 완전히 드러내지도 않는, 미묘한 중간 지대를 만들어낸다. 저건 왜 저렇게 해놨을까?
아침에 출근해서 회의실에 들어왔다. 유리에 붙어있는 시트지에 눈길이 갔다. 저 시트지에는 아주 고의적으로 가느다란 홈이 나있다. 완전히 가리지도, 완전히 드러내지도 않는, 미묘한 중간 지대를 만들어낸다. 저건 왜 저렇게 해놨을까?
위워크, 패스트파이브 같은 곳의 회의실에 가보면, 회의실 벽이 통유리로 뻥뻥 뚫려있다. 왜 그렇게 하는지는 이해가 간다. ‘가림’은 권위와 위계질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 기업의 사무실을 생각해보자. 부장님 책상은 아무나 볼 수 없지만, 사원 책상은 모두가 잘 보인다. 전무님쯤 되면 자기 방이 따로 있다. 높은 직급의 사람 쪽은 쉽게 볼 수 없도록 해놓은 거다. 그 폐쇄성이 위계와 권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밀레-니얼 세대 기업, 스타트업들은 개방된 사무실 구조를 선호한다. 책상 사이 가림막도 없애고, 대표도 다 똑같은 책상에 앉는다. 회의실도 투명한 통유리로 벽을 한다. 개방성, 수평적인 구조를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하지만 난 완전 개방된 회의실은 좀 불편하다.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 화장실 가는 사람들이 회의실 안에서 누구와, 뭘하고 있는지를 다 흘끗 보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보이게 해놨으니까, 보는 게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시선이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인다고 해야 할까?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개방성은 추구하고 싶지만, 회의실까지 다 보이는 건 좀 불편하다는 것은 아마 나만의 생각은 아닌가보다. 그러니까 사진에서처럼 그 중간쯤에 살포시 걸친 인테리어가 등장한 것이다.
그냥 지나가면서는 회의실 안에서 뭘하는지 볼 수 없다. 하지만 가까이 와서 홈 안을 들여다보면, 내부 상황을 볼 수 있다. 불편함을 만드는 의도치 않은 시선은 차단하되, 필요하면 안은 볼 수 있다는 식으로 타협한 결과물이다.
나는 저 정도가 딱 마음에 든다. 그래서 지금 이 글도 회의실 안에 들어와서 쓰고 있다. 잡생각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