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사나 명상 코스 일기: Day 6
6일차 오전. 오늘도 비파사나 명상을 반복한다. 몸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차례차례, 한번에 하나씩 관찰한다. 오늘은 From head to feet 만 하는게 아니라 From feet to head 도 해보라고 고엔카가 말했다.
비파사나 - Body scan정수리에서 시작한다.
이마, 눈, 코, 볼, 입, 턱, 목, 어깨, 팔 위쪽, 팔꿈치, 팔 아래쪽, 손목, 손가락…
왼쪽 팔도 똑같이.
끝나면 돌아와서 쇄골, 가슴, 명치, 배, 등 상부, 등 하부, 허리, 엉덩이…
다리로 가면 허벅지, 무릎, 종아리, 발목, 발가락…
여기까지 오면 다시 반대로 올라간다. 발가락, 발목, 종아리…
4일차에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한 번 도는데 30분 걸렸다. 처음엔 집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젠 한 라운드에 딱 10분 정도 걸린다.
감각이 잘 느껴지는 부분이 있고, 아닌 부분이 있다. 손, 얼굴은 가만히 있어도 확확거리는 강한 느낌이 있다. 평소 감각을 많이 쓰고 신경이 발달한 부분이다.
반면, 팔, 허벅지 같은 곳은 손으로 누르고 있어도 그 감각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머리로는 허벅지에 내 팔이 닿아있다는 걸 아는데 감각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같은 제사를 하면 뇌에서 신호를 스킵하는 건가?
왜 감각이 안 느껴지지? 이런 스트레스를 받고, 뭔가 느껴보려고 더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이런 둔감한 부분에서 평정심이 많이 깨지는 듯 하다.
민감한 부분은 감각 신호가 많이 와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게 쉽다. 하지만 둔감한 부분은 별다른 신호가 없어서인지 내가 의식적으로 뭔가 더 힘을 주지 않으면, 금방 지루해서 딴 생각이 든다.
명상 퀄리티의 기준: Equanimity고엔카는 가이드에서 계속 말한다. 안 느껴지는 곳에서 너무 어떠한 감각을 느끼려고 노력하지 말고, 어떠한 감각에 좋은 것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말라고. 좋고 나쁨이라는 그 반응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안 느껴지면 보다가 그냥 넘어가라고 한다.
명상의 수준(Quality)를 어떻게 잴 수 있는가? 고엔카는 명상을 하면서 ‘어떤 감각’을 느꼈는지가 아니라, 어떤 감각을 느끼더라도 평정심(Equanimity)를 유지했는가가 퀄리티의 기준이라고 했다.
평정심(Equanimity)란, 즐거운 감각이 계속되기를 바라지 않고, 불쾌한 감각이 멈추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다. 감각을 0으로 만들거나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나 생각에 대한 기대치가 0인 상태다.
비파사나를 배우려고 발리까지 와서 하루 종일 명상을 하는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 노력의 핵심이 기대치를 0으로 만드는 거라고? 그렇다면 기대치를 0으로 만드는 노력은 무엇이지?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뭔가 잘해서 얻어가야하는 건데. 노력의 목표가 결국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을 들은 느낌이다.
뭔가를 하지 않는 것을 노력하는 상황은 참 힘들다. 여기서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움직이지 않기: 파리를 쫓지 않는 연습
의욕을 잃지 않기 위해 목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지금 내가 더 잘 해야하는 것은 무엇인가?
명상 중에는 어떤 불쾌한 감각/고통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반응이 된다. 명상에서는 주로 허리가 아프거나, 파리가 몸에 붙었을 때 불쾌한 감각이 일어난다. 수련의 목표는 그 불쾌한 감각을 피하거나 자세를 바꾸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곧 반응하지 않음이다.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곧 ‘명상 중에 움직이지 않음’이라고 해석해본다. 내가 명상을 잘하고 있는지,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얼마나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는가’로 재어볼 수 있겠다.
담마 게하 센터에는 파리가 많다. 가만히 있으면 명상 홀이나 방이나 시도때도 없이 달라붙는다.
비파사나는 ‘파리를 쫓아내지 않는 연습’이다. 1) 파리와의 접촉, 2) 촉각이 파리라는 것을 인지, 3) 불쾌함을 느낌, 4) 손을 휘저어서 쫓아냄. 이런 단계로 의식이 이어진다. 하지만 3단계에서 그 감각을 그대로 둔다.
파리는 또 붙을 것이다. 파리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환경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외부 환경의 변화에 불쾌함이라는 딱지를 자동으로 붙이고, 짜증이라는 감정과 함께 손을 휘저어서 쫓아낸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파리라는 존재는 나한테 거의 물리적 데미지를 가할 수 없는데, 내가 파리의 감각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해서 짜증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일어나고, 그게 더 큰 정신적 데미지가 된다.
그러니까 비파사나는 파리를 쫓지 않고 그냥 지켜보는 연습이다. 파리가 가득한 인생에서도 짜증이 나지 않는 마음을 만드는 일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파리붙음이라는 불쾌함을 접하면 내 본능은 즉각적으로 피하라고 소리지른다. 파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파리를 쫓아내지 않아도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치만 본능은 그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이 팔을 흔들라는 강한 욕망을 느낀다. 의지로 그것을 참으면 진짜 뇌속이 부들부들 떨리는 느낌이다.
파리가 만드는 간지러움을 그대로 쳐다보고 있는 일은 정말 생소하다. 그런 간지러움은 제대로 의식하기도 전에 이미 본능적/반사적으로 쫓아내는 반응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처럼 흐르는 의식, 날카로워진 감각
6일차 오후 명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목표를 다짐하고 들어갔다.
굉장한 진전이 있었다. 꼼짝도 하지 않고 3바퀴 스캔을 해낸 것이다. 중간에 땀나고 파리붙고 가렵고 저리는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움직이지 않았다. 자세도 한 번도 바꾸지 않고, 눈도 뜨지 않고,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 뿌듯했다.
그 와중에 새로운 신기한 감각을 느꼈다. 몸을 스캔할 때, 처음에는 내가 한 부분 한 부분씩 내 의식으로 쿡쿡 찔러서 느낌이 있나 없나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의식이 마치 점성이 있는 끈적한 물처럼 내 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으로 바뀌었다. 정말 신기했다. 내가 억지로 움직이지 않아도 이 천천히 흐르는 물이 스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내가 다음 부분으로 움직여야지 하고 애쓰지 않았다. 마치 그 찐득한 흐름이 내 몸을 타고 쭉 밀려가는 느낌이었다. 그 흐르는 의식이 닿으면 그 부분의 감각이 느껴진다. 정말 신기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각이다.
저녁 명상에는 한번 더 나아갔다. 안 움직이고 4바퀴를 도는데 성공했다. 나 자신 칭찬해. 4바퀴를 돌아도 명상 시간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남은 시간은 너무 힘들어서 대충 때웠다.
남는 시간에 잠깐 아나빠나(호흡)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코밑의 감각에만 집중했다. 분명 첫날에는 코밑에서 아무런 느낌이 없어 너무너무 지루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강렬한 감각이 느껴졌다. 미세한 전기가 튀고 있는 것 같은. 분명 4일 전에는 아무것도 안 느껴졌는데.. 이게 수련의 효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