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사나 명상 코스 일기: Day 3

2025. 11. 12·published in 1일1글

자고 일어나자 온몸이 뻐그덕거리는 느낌이었다. 점점 몸에 데미지가 쌓이나? 계속 자세가 신경 쓰이고, 목이 당기고, 허리가 아프다 이런 쪽으로 생각이 쏠려서 명상에 집중이 안됐다.

이탈자어젯밤에는 첫번째 이탈자가 있었다. 어떤 다른 학생이 미니 홀에서 선생님과 얘기하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조교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그가 놀라서 ‘Now?’ 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러시아인 같았는데 밥 먹을 떄 내 왼쪽 뒤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밖에 몰랐다. 그는 곧장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곧 명상 시간이 시작되어 나는 명상 홀로 들어갔다. 명상하는 동안 갑자기 오토바이에 시동이 걸리고,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떠났나보구나. 하지만 나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내가 지금 나가면 뭐할건데. 끝은 보고 나가야지.

나중에 선생님과 얘기하다 들었는데, 그는 명상을 시작하자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트라우마가 올라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명상을 진지하게 하면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올라올 수 있다.

면담오늘은 처음으로 선생님과 면담을 신청했다. 비파사나 명상 코스에서는 매일 점심에 선생님에게 면담 신청을 할 수 있다. 이 때가 거의 유일하게 말을 하도록 허락된 시간이다. 명상을 하면서 드는 의문, 어려움 등을 얘기한다.

“이렇게 단순하게 호흡을 보는 기술이 어떻게 효과가 있는지 의심이 계속 올라온다. 선생님도 처음 비파사나를 배울 때 이런 의심을 느끼셨을 텐데, 언제부터 확신을 갖게 되셨냐?” 내가 물었다.

선생님의 이름은 타쿠 오츠케. 머리는 밀었고, 부리부리한 눈썹을 가진 마른 몸의 일본인이었다. (비파사나 지도자들은 전세계의 센터를 돌아다니면서 봉사를 한다고 한다.) 영어를 할줄 아셨지만 짧고 간결하게만 말하는 편이었다.

타쿠 선생님은 4일차에 비파사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달라질 거라고 했다. 자기도 비파사나를 접했을 때 행복해짐을 느꼈다고. 아나빠나는 비파사나를 위한 준비 연습이기 때문에 아직 느낄 수 없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의심은 당연히 있을 수 있으니, 거기에 대해서 피하거나 다가가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놔두라, 고 했다. 비파사나를 시작하면, 말로 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알게 될 거라고.

그러나 난 참으로 의식적인 인간 같다. 논리적이고 지적으로 납득하고 싶어한다. 근거가 뭐지?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어쩌면 이 10일 동안은 얘네들을 내려놔야겠다. 진짜로 밑에서 무언가가 올라올 기회를 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해가 아닌 경험저녁이 되었다. 3번째 설법. 큰 울림이 있었다.

고엔카가 말했다. “명상은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으며 변한다’라는 사실을 이해가 아니라 ‘경험’하기 위한 것이다.”

마치 불꽃이 하나의 고정된 물체라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보면 계속해서 터지고 사라지고 올라오고 스러짐을 반복하는 것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도 그러하고,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게 들고 난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Hard-core 한 본질이란 없다.

하지만 그것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별로 소용이 없다. 고엔카는 짧은 얘기를 해주었다.

친구의 장례식에 간 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친구의 관을 보며 ‘아 정말 인생이란 짧고 금방 변하는 것이며 영원한 것은 없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나도 언젠가는 죽겠구나’라는 사실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리고 나서 장례식장을 나온 그 사람은 곧바로 소리질렀다. ‘내 차 어디갔어? 누가 내차 가져갔어?’

나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는 사실이다. 죽음을 기억할 것. 인생은 짧다. 창백한 푸른 점. 등등. 사실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붓다의 이전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그것을 밝혀낸 과학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붓다가 기여한 것은, 그것을 ‘직접 경험’하는 법을 알아낸 것이다.

우리는 내 몸을 관찰한다. 외부의 불이 변하는 것이나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지 않는다. 내 몸만이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파사나는 내 몸의 깊은 수준을 관찰한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사실을 경험하기 위해서이다. 고정된 나라는 것은 없으며, 그렇기에 나라는 느낌, 내 것이라는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이를 경험으로 깨닫는 것이 명상의 목표다.

그 설법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머리로 이해할 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경험의 단계를 찍먹하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