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센터 후기 (4) 감정이 나를 속일 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감정이 사실 ‘환상’, ‘거짓’일 수 있다. 즉, 나는 감정에 속을 수 있다.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인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명상은 이 환상을 벗겨내는 과정이다.
다음날 발표 때문에 너무 긴장이 되어서 잠이 안 오던 날이 있었다. 침대에 일어나 앉아 명상을 하기로 했다. 호흡에 얼마간 집중했고, 동시에 내 불안에 집중했다.
여기서 불안이란 내 배쪽의 당기는 느낌이었다. 명상 코스에서 배운 것처럼 그걸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 불안이라는 감정은 꼭 나쁜 것이 아니다.
> “이 불안으로부터 도망쳐야할 이유는 없다.”
> “그냥 감정일 뿐이다.”
물론 그 감정은 기분 좋다고 할순 없었다. 하지만 내가 판단없이 관찰하자, 그 불안이 주는 불쾌함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불안이 다르게 보였다. 마치 박물관의 조각상 같은 제 3의 대상, 물체로 보였다. 두껍고 단단하게 꼬인 밧줄 같았다. 내 복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쪽에서 강하게 조이는 느낌은 사라졌다. 1분전까지만 해도 고통스러웠던 불안이, 이제는 그냥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자 그 불안은 녹았다.
나는 그날 누워서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마치 인지행동치료 같았다. 인지 행동 치료는 ‘내가 걱정한대로 진자 발표를 망치면, 정말 내 커리어가 날아가버릴까?’ 라고 묻는다. 그런 질문을 던지다보면, 내가 가진 불안이 사실은 별로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감정이 약해진다.
명상과 인지행동치료는 둘다 정말 이 감정이 유효한가? 를 파고든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인지행동치료는 좀 더 명시적이고 논리적일 뿐이다. 실제로 마음챙김 기반 인지행동치료(mindfulness based cognitive therapy - MBCT) 라는 것도 있다.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감정은 나를 속일 수 있다.- 감정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라, 수렵채집 시절의 인간 유전자를 더 후대에 잘 전달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래서 생존에 유리하기만 하다면, 실제가 아닌 것들을 보고 듣도록 만든다. 완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내가 이상하게 입은 옷을 쳐다본다고 느끼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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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미 감정이 진화하던 시절의 환경이 아닌 현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감정에 속는 이유다. 10만년전에는 옳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옳지 않은 감정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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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속해서 기분좋은 감정을 느끼고 싶은 본능이 있다. 좋은 감정이 실제보다 오래 갈거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좋은 감정이 지나가고 사라지면, 불쾌함을 느끼고 다시 좋은 감정을 더 추구하게 된다. 붓다는 이 사실을 설파했고, 두카(dukkha)라고 불렀다. **‘인생은 두카로 가득차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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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심리학자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새로운 사건이나 변화에 대해 개인이 빠르게 적응하여 시간이 지나면 행복 수준이 다시 원래 수준으로 돌아가는 이런 두카 현상을 ‘쾌락의 쳇바퀴’라고 이름 붙였다.
벗어나기하지만 감정이 나를 속일 수 있다는 걸 알아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따라 행동하도록 설계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따를 때 우리가 옳다고 느낀다.
우리가 명상을 하더라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해야하는 이유가 이것일지도 모른다. 10일이나 침묵하는 이상한 명상센터에 가서 완전히 거기에 젖어들 정도로 몰입해야만 겨우 맛을 볼 수 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