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원인과 해결책

2025. 06. 30·published in 1일1글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 Ally

> 가끔 떠오르는 내 안에 작은 불안한 불씨들을 발견할때마다 이 것들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깊이 들여다보려고한다. 신기하고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감정.

> 내가 생각해본 불안은, 나의 기대와 현실이 맞지 않을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스믈스믈 다가오는 불안은 예전 기억들, 예전 실망감에서 오는 경우들이었다.

> 불안을 어떻게 다뤄야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솔직해지는 것이다. 불안함을 인정하고 그 근원을 찾고 마주하는 것.


<불안>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이 있다. 책은 ‘원인’ 파트와 ‘해법’ 파트로 나눠져있다.

Part 1. 원인

I. 사랑결핍 / II. 속물근성 / III. 기대 / IV. 능력주의 / V. 불확실성

Part 2. 해법

I. 철학 / II. 예술 / III. 정치 / IV. 기독교 / V. 보헤미아

<원인>‘원인’ 파트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존감을 공격하는 환경’이다.

‘자존’. 나는 존재할 가치가 있다. 자존은 생각보다 깨지기 쉽고 연약하다. 누구나 처음에는 그렇다. ‘자존’이 없으면 우리는 우울해지고, 불안해하고, 화를 낸다.

알랭 드 보통은 ‘자존’을 건드리는 것들을 하나씩 설명해준다.

타인으로부터의 무관심, 속물적인 태도, 낮은 지위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능력주의, 준거집단과의 비교, 점점 더 불확실해지는 세상.

내 연약한 ‘자존’을 공격한다. 우리는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산다.

<해법>사실 ‘불안’은 나의 특별한 감정이 아니다. 몇천 년 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해법> 파트에서는 여러 시대의 여러 사람의 해결책을 들여다본다.

  • 소크라테스는 “당나귀가 걷어찼다고 내가 화를 내야 옳겠느냐?”라고 말했다.

  • 제인 오스틴은 소설을 통해 속물근성, 지위 체계를 비판한다.

  • 버지니아 울프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이 사실은 목적을 지닌 이데올로기라고 했다.

  • 톨스토이는 죽음, 모든 것이 끝내는 먼지가 될 것임을 생각했다.

  • 보헤미안들은 부르주아지의 지위와 가치관을 거부하고 예술과 영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자존을 깎아내리는 지위의 고하 자체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대신 다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위에 새로운 위계를 세웠다. 각 시대의 지배적인 관념과 가치관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다.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한 다른 길이 있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자존’을 지켜낼 수 있었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의 해법을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치 체계는 존재해야 하지만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기준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각 개인이 스스로의 지위를 측정하는 잣대를 만들고, 그 기준에 맞춰 살아가면 된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법’자기 자신의 기준’. 물론 말은 쉽다.

하지만 솔직히 살다보면 막막하다. 내가 뭘 목표로 삼아야하는지 모르겠고.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볼까 두렵고. 지금의 시간과 노력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누구나 삶이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령 나는 코딩하는 삶을 선택할 때가 그랬다. 그동안의 나와 다른 나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서 많이 고민했다.

> 이게 나의 기준이 맞나?

> 나에게 어울리는 일인가?

> 나는 개발이 왜 재미있을까?

> 사람들은 내가 개발하는 걸 생뚱맞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 내가 지금 이 정도의 일에 쩔쩔매는 것보면 나는 개발에 소질이 없는 것 아닌가?

> 취미로 앱을 만드는 너드들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잘하는 개발자일까?

이런 잡생각과 고민들이 올라오던 때에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면, 이런 의문과 고민이 언제 올라오는지 보인다. 내가 남의 기준으로 나를 규정할 때 나온다. 바꿔 말하면, 내 기준으로 나를 규정하는 힘이 약할 때 드는 생각들이다.

흙바닥을 까뒤집기그럴 때마다 나는 계속 글쓰기를 찾았다. 내 고민이 뭔지, 내가 이런 선택을 한다면 어떻게 될지, 나라는 인간은 왜 이런 것에 긁히는지. 파내려갔다. 고민을 계속 글로 풀었다.

하도 글로 풀다보니, 글을 쓰면서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고민이 있는데 글만 쓰고 있는다고 해결이 되니?

맨날 똑같은 고민을 또 하고 있네..

하지만 그렇게 내 마음의 흙바닥을 까뒤집으며 써낸 글들을 보다보면,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욕망하는지 점점 보였다.

예를 들면 나의 경우는 ‘평범해지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욕망’, ‘새로운 세계로 팽창하고 싶은 마음’,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등등… 이었다.

그걸 바탕으로 나는 글을 썼다. 스토리를 엮었다. ‘나는 왜 개발을 시작했는가’ ‘나는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가’ ‘개발을 잘하려면, 꼭 필요한 3가지’ ‘개발의 슬픔과 기쁨’ ‘개발은 왜 글쓰기와 비슷한가’ ‘나는 왜 토스에 붙었을까’ 이런 주제들에 대해 썼다.

즉, 글쓰기를 통해 ‘개발자로서의 나’를 규정하려고 했다.

그 규정이 조금씩 단단하게 바닥을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그 위에 자존감이 쌓였다. ‘그래, 내가 저걸 못한다고 개발자로서 가치가 없는 건 아니야. 나는 이런 걸 잘하니까’ 이런 식이었다. 남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여유가 조금 생겼다.

나는 이래.

나는 이래서 가치있고.

나는 이런 것은 못해.

나는 이럴 때 즐거워.

나는 이런 것들을 할 때 뿌듯해.

이렇게 규정하고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 사람은 자신의 기준으로 자신을 정의하기 때문에, 나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다.

흔히 이런 사람은 질투와 시샘이 적다.

저 사람은 저런 부분을 잘하는구나. 대신 나는 이런 부분을 잘하니까.

저 사람은 나보다 어린데도 이정도구나. 대신 나는 다양한 경험이 있으니까. 오케이 인정.

자존이라는 면역력을 기르는 운동자기 관찰과 자기 규정, 그 위에 쌓아올린 자존감은 삶에서 꼭 필요한 면역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겪을 수밖에 없는 시련, 무관심, 따분함, 자괴감 같은 바이러스들에 대한 면역.

그 ‘자존’이라는 그 면역력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나는 그게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하면 자기만의 기준이 생긴다’는 ‘달리기를 하면 건강해진다’와 거의 같은 급의 팩트라고 믿는다.

글쓰기는 직장에서 에이스가 되기 위해, 팔로워 수를 늘리기 위해 유용한 스킬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를 규정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선언의 강력함은 글로 남길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수록, 반복할수록 강해진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말해보는 것이 더 강력하다. 말로만 하는 것보다는 글로 눌러 써보는 것이 더 강력하고. 혼자 쓰고 간직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는 것이 더 강력하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자기 규정’을 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나에게 글쓰기는 자존을 쌓는 도구’라는 규정이다. 그래서 자존감이 한 꺼풀 더 쌓인 느낌이다.

내가 인생이 막힐 때마다 글을 쓰는 이유, 누구에게나 글쓰기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