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땅에서 주제를 낚는 방법
아.. 오늘은 쓸 말이 없다. 실제 상황이다. 무언가 쓰려고 저장해둔 것들도 비었다. 요 며칠 간은 가만히 앉아서 차분하게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말 그대로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계속 분주했다.
하지만 쓸 말이 없을 때가 진짜 글쓰기의 시작이다. 라고 멋있게 써본다. 사실 글쓰기란 쓸말이 있어서 책상 앞에 앉는 행위가 아니다. 일단 책상 앞에 앉아서 쓸말이 없는데도 시작을 하는 것이 글쓰기다. 항상 하는 말이라 지겹다는 자기 비판을 해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또 까먹는걸. 쓸 말이 없어도 앉아서 글을 쓰기. 인생에서 가장 몸으로 깊게 새겨 배운 말이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오른쪽 잇몸에 통증이 왔다. 급하게 출근길에 치과를 갔다. 잇몸에 염증이 생겼다고 한다. 마취를 하고 뭔지 모를 치료를 받았다.
왜냐고 물어보니 사랑니 때문이란다. 오른쪽 잇몸 깊숙한 곳에 사랑니가 숨어있다. 예전에 다른 사랑니를 뺄 때 “이 녀석은.. 뭐 깊게 묻혀있어서 지금 큰 문제는 아닌데.. 뭐 굳이 안 빼시려면 안 빼셔도 돼요.” 라고 강남의 레옹치과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사랑니가 잇몸 속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보니, 그 앞쪽의 이빨을 감싸고 있는 잇몸이 약해서 어금니를 꽉 쥐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여기 사이에 공간이 벌어져 있네요 그죠?” 핀셋으로 빈 공간을 쿡쿡 찌르며 의사가 말했다.
그래서 염증이 잘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심한 건 아니어서 그냥 살 수도 있단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를 하려면 잇몸을 뒤집어서 안에 있는 사랑니를 뽑아야 한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건 모르겠고 일단 안 아팠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배가 고프다. 왜냐하면 마취가 풀리고 나서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1시에 밥 먹는 규칙적인 직장인인데 지금은 1:30이다. 정확히 1시부터 꼬르륵거린다. 정말 인간의 배꼽시계란 신기하다. 뭔가 아직 마취가 안 풀린 느낌이 있는데. 결국 못 참고 샌드위치를 한번 베어물었다.
으엑. 너무 아프다. 씹는데 여전히 통증이 있다. 아니 이건 마취가 오히려 잘 풀린건가? 마취가 너무 풀린 건지 치료가 안된건지 모르겠다. 배는 고픈데 먹을 수가 없다..
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단 5분만에 꽤나 많은 글을 썼다. 물론 이 ‘이 아프다’ 타령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의미를 부여해가는 과정이다.
잠깐 멈추고 내가 쓴 ‘이 아프다’ 타령을 다시 읽어보자. 어떤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가? 뭔가 그래도 더 쓰고 싶어지는 부분이 있는가?
내가 눈에 들어오는 건 다음과 같다.
- ‘심한 건 아닌데 근본적으로는 사랑니를 뽑아야한다고 했을 때 나의 반응’
왠지 이건 말을 해보고 싶은 주제다.
심한 건 아닌데, 가끔 나를 괴롭히는 염증을 만드는 잇몸 속의 사랑니. 빼려면 시간과 돈과 고통참기가 필요하다. 뺄 것인가 말것인가.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모르는 메마른 땅에서, 주제 하나를 건져올린 느낌이다. 이 정도면 매일 글쓰기의 효과는 충분히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