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갈아타기
살면서 확실하게 하나 배운 게 있다. 삶에서 고통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딩 때는 대학만 가면 고민이 없을 줄 알았다.
대학 때는 취업만 하면 고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원래 사람의 고민은 끝이 없다.
‘무언가 저 고지만 찍으면 세상 고민이 다 사라지겠지?’ 라고 막연히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이제 꽤나 확실해졌다. 내가 내일 재벌이 된다하더라도, 내일 로또에 당첨된다 해도.
고민은 그 얼굴만 바꿀 것이다.
늘 짜증나는 일과 우울한 일과 고통스러운 일은 내 삶에 존재할 것이다.
사람이 생겨먹은 본능이 그런 것 같다. 이 고통을 제거하려면, 욕망 Want 를 내려놓아야 하겠지. 그건 그 나름대로 매우 어렵다. 부처님의 길이다.
고통을 제거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최선은 고통을 갈아타는 것이다. 내가 견딜 수 있는 고통. 그나마 더 나은 고민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퇴사를 하고 사업을 시작한다면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고통을 갈아타는 일이다. ‘직장인으로서 내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는 고통’에서, ‘답도 없고 보장도 되지 않는 경제적 불안정성의 고통’으로 갈아타는 선택이다.
고통의 크기와 고민의 가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견딜 수 없는 9-6 출퇴근의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어떻게 하면 더 팔로워 수를 늘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누군가에게는 가치없어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치있다.
경험상 ‘뭐가 나에게 더 이득이 될까? 더 행복할까?’ 라는 질문보다는, ‘내가 견딜 수 있는 고통이 뭘까?’ 라는 질문이 항상 더 옳은 선택을 이끌어냈던 것 같다.
여태까지 나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은 ‘내가 오르고 있는 산의 경사, 내 성장의 기울기가 낮아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고통을 견디기보다 차라리 ‘생판 모르는 분야에 뛰어들어 초보가 되어야 하는 고통’을 선택해 일부러 갈아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