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사나 명상 코스 일기: Day 1

2025. 11. 10·published in 1일1글

(명상 캠프 후기를 뭔가 잘 하나의 프레임으로 정리해서 써보고 싶었는데, 잘 안 되네요. 그냥 있는 그대로 제 생각의 흐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안에서 몰래 적었던 기록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Day 02시부터 5시까지 접수를 받았다. 나는 11번 방을 배정받았다. 아직까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몇몇 사람들은 서로 잡담을 나누었다.

5시가 되자 명상 센터와 코스에 대한 짧은 오리엔테이션이 이어졌다. ‘Novel Silence’가 시작되었다. 신성한 침묵. 이제 코스 내내 수련생들끼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OT를 할 때 보니 남녀가 각각 정확히 24명씩. 총 48명의 수련생이 한 기수를 같이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빈 자리는 없었다.

게다가 정말 사람들이 다양했다. 생긴 외모로 봐도 그랬고, 자리에 붙은 이름표를 보아도 이탈리아부터 러시아, 인도, 일본 이름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발리라서 그런걸까?

놀라웠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 깡시골에, 불편한 잠자리와, 수수한 음식, 공동 화장실, 많은 벌레를 견뎌가며 거기다 말 한 마디 못하는 10일을 보내려 이 좁은 곳에 다 모여있다니. 막상 여기에 도착하니 나조차도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사람이 50명이나 된다는 걸 눈으로 보니 신기했다.## Day 1뎅- 4시에 공이 울렸다.

이 기상이 최대 관문일지도 모른다. 어디서든 잘 자는 체질 덕인지 그래도 어제 일찍 잘 잤다. 덕분에 금방 적응한 듯.

4시 20분부터 2시간 넘게 새벽 명상을 했다.

와 정말 힘들다. 중간에 어지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끊임없이 자세를 바꾸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호흡을 세어보려고 노력했다. 대부분 10번 이상 세지 못했다. 다른 생각들에 휩쓸려 갔기 때문이다. 계속 시계를 확인했다.

회사 컴퓨터 앞에서는 2시간 동안 앉아있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여기서는 왜 이렇게 힘들지?

**아무런 자극이 없다. **

지금처럼 글이라도 쓰고, 집중할 게 있으면 그나마 시간이 빨리 간다. 하지만 명상은 숨이 오가는 걸 그냥 보고 있어야 한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숨을 조절하지 않고 그냥 있는대로 본다. 단조롭다.

이제는 무슨 자극이든 반갑다. 밥 먹는 것 시간 돼도 즐겁다. 그나마 시간이 빨리 간다.

**점심 시간. **

밥과 채소, 두부조림 같은 것이 나온다. 채식이다. 한 20분이면 다 먹는다. 끝나면 직접 식판을 설거지한다. 줄 서서 배식받는 것부터, 식판 닦는 것까지 군대 시절을 떠오르게 만든다.

조그만 식당에서 24명의 남자가 한쪽을 보고 4줄로 앉는다. 아무 말도 없이 각자 밥을 우겨넣는다. 명상 홀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서 남녀는 분리되어있어서 여자쪽은 보이지 않는다. 밥을 다 먹은 남자들은 가정집 뒷마당 정도 될만한 공간에서 어슬렁거린다. 새삼 초현실적이라고 느낀다.

**오후 명상. **

이 주변은 전부다 농장인 것 같다. 닭, 돼지, 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정말 시끄러웠다. 명상하는 내내 신경쓰였다. 아니 명상에 방해가 된다고 서로 말도 안하고 소리도 못내게 하면서 왜 명상 센터는 이런 동물농장 한 가운데다가 지어놓은거야?

근데 명상할 때는 그렇게 신경쓰이던 동물 소리들이, 방에 돌아오면 또 그렇게 시끄럽게 들리지 않는다. 배경음처럼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다른 관심거리가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고요한 명상홀 안에서는 너무나 선명히 들렸는데.

명상을 통해 닿고자 하는 최종의 상태는 에고를 녹이는 것이다. 정말 어렵다. 평생 두 다리로 걸었고 그걸 어떻게 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당연한 사람이 갑자기 물구나무 서서 걷기를 배우는 느낌이랄까. 온 몸이 익숙하지 않고, 잘 안 되니 지루하고 괴롭다.

명상은 정신적 활동일 것 같지만 생각보다는 몸으로 배우는 것에 가깝다. 물구나무 서기를 하듯이. 비파사나는 이론보다는 경험과 수련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 수련이 빡세다보니 계속 마음속에 의문이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정말 이렇게 하면 내가 바뀔까?’ ‘꼭 10일을 채워서 해야하는 이유가 뭘까?’ ‘이렇게 해도 안 바뀌었는데 내가 따지면 충분히 수련을 안해서 그렇다 라고 하지 않을까?’ ‘반증불가능한 것은 과학이 아닌데 내가 뭘하고 있는 거지?’ ‘이 코스에 그렇게 특별한 게 있을까?’

**오후 명상이 끝났다. **

당연히 저녁을 줄줄 알았는데… 시간표에 Tea break 라고 써있다? 식당으로 가보니 바나나 하나와 뜨거운 물 녹차백, 티백들이 놓여있었다. 바나나를 우물우물 삼키면서 걱정했다. 이것만 먹고 버틸 수 있을까? 심지어 구수련생은 아예 바나나도 안 준다. 와, 저기 전신 타투한 사람은 먹성 진짜 좋아보이는데 물만 마시고 있네…

명상 시간 중간에는 고엔카 선생님의 오디오 가이드가 나온다.

> 마음이 방황하는 것은 정상이다. 마음이 방황을 하다가 5분 안에 마음이 돌아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로 하면 된다. 5분 이상 걸리면 숨을 의도적으로 약간 더 세게 쉬어라.

5분? 아무런 목표가 없고 시지프스의 돌덩이를 올리는 것만 같았는데, 5분이라는 기준을 주니까 관심이 확 갔다.

손목시계를 보면서 내가 딴 생각을 했다가 호흡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작하는 시간을 기억해두었다가. 호흡을 한 10번 하다보면 ‘지금쯤 연지는 집에서 홈파티를 하고 있을까?’ 하는 잡생각으로 흘러간다. ‘아 숨으로 돌아가야지’ 다시 알아차리면 그때 다시 시계를 본다.

보통 2-3분 정도였다. 시간을 확인하자 자신감이 붙었다. 음.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의욕이 좀 생겼다.

**하루의 시간표가 끝날 무렵, 1시간 강의(discourse)가 있다. **

하루의 커리큘럼이라고 해봤자 결국 밥 먹고 명상하고 밥 먹고 명상하고 잔다, 가 끝이다. 하지만 저녁 마지막 즈음에는 고엔카 선생님이 예전에 10일 코스를 진행했던 녹화 영상이 나온다. 화질을 보아하니 한 20년 정도 된 영상 같다. 고엔카 선생님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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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엔카 선생님은 비파사나 명상과 10일 코스를 대중화시킨 사람이다. 이 문파?의 지주였다고 할까? 이미 2013년에 돌아가셨지만 10일 코스에서는 여전히 그의 영상을 틀어준다. 명상 홀에 지도하는 선생님이 계시지만, 대부분의 교육, 가이드는 고엔카 선생님의 음성으로 이루어진다.

특유의 인도 발음이었지만 영어 자막이 있어서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긴 설교이지만 고엔카의 입담이 좋아 지루하지 않았다.

> 생각에는 흐름이 없다.

네 마음의 오래된 습관.

마음은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과거 혹은 미래로.

하지만 나는 거기에 판단을 붙인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이 생각의 패턴이 고착화된다.

집착(Craving)과 회피(Aversion)을 만든다.

왜 호흡인가?

나라는 존재를 경험적, 무의식적으로 느껴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몸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움직이고 숨쉬고 박동하고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의식적인 것만 느낀다. 호흡은 의식적일 수도, 무의식적일 수도 있는 희귀한 활동이며 그래서 두 세게를 연결하는 다리라고 한다.

단순히 정신을 모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수단일 뿐이고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경험’해야 한다. 집중과 이완을 통해 감각을 예민하게 키워서 내 무의식 속에서 어떤 텐션 (즐거운 자극에는 다가가고 불쾌한 자극은 밀어내는 자동적 반응) 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 속의 텐션을 모르는 상태를 ‘무지(ignorant)‘하다고 하며, 그것이 우리의 불행을 만드는 시작이라고 했다.

**솔직히, 머리로 이해되는 건 아직 없다. **

그래도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허리도, 등도 너무나 아프고 아직도 9일이나 남았다는 사실이 아득하지만.

고엔카는 인생에서 이 10일이 적어도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거라고 말했다. 열심히 해봐야지.


(Day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