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군 전환 이야기

2025. 07. 16·published in 1일1글

작년 초, 회사에서 팀을 옮기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가고 싶은 팀이 있는지 물어볼 게 뻔해서 곰곰히 살펴보는데, 좀 답답했다. 내가 관심있는 팀에는 ‘iOS 개발자’를 필요로 하는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빠르게 실험을 돌면서 가설을 검증하고, 손에 잡히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게 재미있다. 또 나의 특이발랄한 백그라운드를 고려했을 때 나는 기술보다는 비즈니스에 더 맞닿아 있는 팀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안정적으로 유지/운영을 해야하는 팀보다는 내일 망해도 뭔가 새로운 걸 도전해보는 팀이 좋다.

그런데 내가 가고 싶은 그럼 팀에는 iOS (네이티브) 개발자 TO가 없었다.

보통 제품 초기에 UI를 네이티브로 만들지 웹으로 만들지를 선택한다. 둘다 장단점이 있지만 웹은 배포와 실험 속도가 빠르다는 압도적인 장점이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곳들은 대부분 웹을 선택한다.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다. 기술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니까. 하지만 회사에서는 iOS/Web 개발자를 엄격하게 다른 직군으로 나누고 있다. “iOS 개발자로서는 내가 가고 싶은 팀을 갈 수가 없구나” 그 사실을 작년 초쯤에 팀을 옮기면서 크게 깨달았다.

꼭 회사 안이 아니라 다른 데를 가면 안 되나?

열심히 찾아봤지만 바깥도 상황은 비슷했다. 내가 보기에 재밌어보이는 스타트업들도 모두 네이티브를 뽑지 않았다. (스타트업은 배포 속도도 속도지만 비용적인 문제로 네이티브를 선호하지 않기도 한다. 2명을 고용해야하는 네이티브 대신 1명으로 다할 수 있는 리액트 네이티브나 플러터를 선호한다.)

iOS 개발도 여전히 재미는 있고, iOS는 희소한 특화 직업이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게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내가 개발자가 된 이유는 특정한 기술의 장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는 가설을 검증하고 제품을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 개발자가 되었다. 난 비즈니스가 잘 된다면 기술은 뭘 쓰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래서 당시에 회사 CTO에게 대뜸 DM을 보내기도 했다.

> 안녕하세요, 형석님. 송금팀에서 iOS 개발 하고 있는 송범근입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DM을 드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 요즘 고민이 있는데, 형석님께 의견을 여쭤보고 싶어서요. 직접 뵙고 얘기하기에는 바쁘실 거 같아서, 급발진해서 DM을 드립니다…

그는 공감을 해주었지만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주지는 못했다. 직군으로 나뉜 회사의 시스템을 바꾸긴 어려워보였다. 내가 그냥 Web을 배워서 넘어가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쉽사리 몸이 움직여지진 않았다.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스킬이 있는데, 이걸 버리고 새로운 분야로 가는 건 아무래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일단 당장은 iOS도 할 일이 있었다. 가고 싶었던 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네이티브가 필요한 팀에 안착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일단 iOS를 하면서 고민도 해보고 뭉개도 보았다.

아직 iOS에서 기술적인 깊이를 더 갖춰야 한다는 피드백을 듣기도 했다. iOS 100하는 사람 FE 100하는 사람 뽑으면 되는데 둘다 50씩 하는 애매한 사람을 (작은 스타트업이 아니면) 뽑겠냐는 말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서버 개발이 유망하고 나중에 도움이 될 것이니 서버 개발을 하라고 조언해주었다. 어떤 사람은 너는 개발보다는 PM에 소질이 있으니 그걸 하는 게 맞는 거 같다고 했다.

그런가?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바뀌진 않았다.

더 이상 미루기 싫어서 올해 목표를 웹 프론트엔드 전환으로 잡았다. 다행히 우리 팀은 네이티브도 있지만, 대부분이 웹이었기에 당장 내가 야금야금해볼 수 있는 게 많았다. 시작해보니 확실히 iOS와는 언어와 체계가 완전히 다르긴 했다. 우리팀 FE 개발자인 창회님의 도움을 받아 차츰차츰 익혀나갔다. (Special thanks to 창회..)

UI 개발이라는 건 기본이 비슷해서 iOS 배울 때보다 훨씬 빨리 터득할 수 있었다. 게다가 때마침 AI 코딩의 시대가 온 게 아닌가. 잘 못해도 어느 정도 보조바퀴를 달고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몇 번 실제 사용자들이 쓰는 제품을 배포보니. ‘오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자신감이 생겼다.

웹/앱 이도류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이제는 결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팀에서는 양쪽이 다 필요하니 겸직 느낌으로 문제 없이 할 수 있다.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결국 어차피 올 미래를 생각해보았다. 언젠가는 또 팀을, 혹은 회사를 옮길 때가 된다. 그러면 FE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6월에 회사에 직군 전환을 신청했다. 프론트엔드 헤드는 좋아하면서도, ‘FE로 전환 신청은 역대 처음’이라며 살짝 당황하는 듯 보였다. (직군 전환은 대부분 클라이언트에서 서버로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다. 고연차 엔지니어는 대부분 서버로 전환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iOS 리드에게도 상황을 설명했고 그는 쿨하게 내 상황을 이해해주었다. 한 HR 담당자는 ‘응원한다’면서도 ‘전환을 하게 되면 혹시나 범근님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연봉 조정 때 원하지 않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데 그 점은 감안하셔라’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묘하게 기분 나쁜 디스클레이머였다.

신청한다고 다 시켜주는 건 아니다. 과제 전형과 기술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7월 첫째주에 과제 전형, 둘째 주에 기술 면접이 잡혔다. 면접을 보기 전 3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준비한다고 오랜만에 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 일을 하면서도 정신 에너지의 30% 정도는 계속 여기에 쏠려있었던 것 같다. 6월에는 할 일도 많았기 때문에 힘들고 지치기도 했다.

솔직히 ‘아 그냥 시켜주면 안 되나 귀찮다…’라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열심히 하게 되더라. 신청해놓고 떨어지면 창피하기도 하고. 이왕 할거면 당당하게 붙는 게 좋다. 무엇보다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재밌다. iOS 방식에만 갇혀있던 생각이 넓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면접은 생각보다 허무하게 통과했다. 면접관은 나름 빡세다는 분이었다. 실제로 날카로운 질문을 몇개 던지긴 했다. 내가 다행히 잘 대답하고 나니, 시간이 절반밖에 안됐는데 씩 웃으면서 끝내버렸다.

오늘 HR 담당자 분한테 합격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직 발표가 난 게 아니고 조직 구성을 논의중이니 공식적으로는 못 들은 척 해달라고 덧붙였다.

기분이 묘했다. 직무 타이틀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늘 머릿속으로 되뇌이는 편이다. 사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하긴 했다. 토플 점수 같은 느낌이랄까? 토플 점수가 실력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교환학생 가려면 토플 몇 점은 넘어야 된다. 그런 최소한의 자격증을 따낸 느낌이랄까.

아무튼 하나를 매듭지은 것 같아 후련하다. 잠깐 벤치에 앉아 신발끈을 묶는 느낌으로 이 여정을 한번 기록해본다. 내일부터는 또 다음 목적지로 열심히 걸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