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사나 명상 코스 일기: Day 4

2025. 11. 13·published in 1일1글

뎅- 뎅-

종이 울렸다. 새벽 4시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뎅- 뎅-

내가 안 일어나는 걸 아는 듯 종이 끝도 없이 울린다. 온몸이 쑤신다.

새벽 명상은 거의 졸면서 보냈다. 6시 반 아침을 먹고 커피를 하나 타먹으니 그제서야 정신이 좀 든다. ## 비파사나 데이식당 앞에 붙은 시간표를 본다. ‘Vipassana day’ 라고 크게 써있다. 오늘은 아나빠나(호흡)을 끝내고 비파사나(insight)로 들어가는 날이다. 뭘 경험하게 될지 궁금하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비파사나 명상이 시작되었다. 2시간 동안 움직일 수 없다고 한다. 여태까지는 힘들면 자세를 바꾸라고 했었고, 1시간마다 한번씩 휴식을 했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10분만 지나도 몸이 아픈데 2시간 동안 움직이지 말라니?

하지만 막상 끝나고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몸을 한 바퀴 돌고 나니까 시간이 엄청 많이 지나있었다. 집중력도 이전까지 명상보다 훨씬 높았다.

몸의 감각을 관찰하기비파사나가 뭐하는 거냐고 하면 한 마디로 바디 스캔(body scan)이다. 몸의 특정 부분을 본다. 머리 꼭대기인 정수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수리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관찰한다. 느낌을 찾아내려고 하면 안된다. 특정한 느낌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Survey & observe. Survey & observe. 바라보고 관찰한다.

part by part. piece by piece. 몸의 부분부분을 나눠서 차례차례 한다.

2시간을 마치고 나온 느낌. 멍하다. 몸이 느려진다. 노곤하다. 관절이 아프지만 심각하지는 않다. 행동이 차분해진다. 감정이 매우 느리게 올라온다.

빨래가 젖었을 때비파사나를 끝나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쏟아졌다. 아까 바깥에 빨래를 널어놓은 것이 기억났다. 아차 싶었다.

그런데 빨리 달려가지 않았다. 그냥 천천히 걸어갔다. 햇빛을 받아 뽀송해지기를 기대한 빨래가 젖었다는 것에 분명 짜증이 났지만, 그게 평소만큼 크게 올라오지 않았다. 반응이 느려진 건지, 아니면 현재의 차분한 상태를 깨기 싫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건조대를 안으로 옮기다 한번 더 사건이 있었다. 속옷이 흙바닥에 떨어졌고, 내가 발로 그것을 밟아버린 것이다. 짜증이 팍 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에 대한 관찰 모드가 MAX였기 때문에, 짜증이 오래 가기보다는 이 짜증이 올라오는 것이 굉장히 부드러운 액셀 곡선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베스트 드라이버가 엑셀을 밟듯 감정이 올라온다는 것을 느꼈다. 메타 인지라고 해야할까.

아나빠나(호흡) 명상에서는 느끼지 못한 차분함이었다. 몸을 관찰하는 것이 이런 효과가 있다니.

왜 몸을 관찰하는가. 하고 많은 것 중 몸을 관찰하는 이유에 대해. ‘내 몸의 감각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모든 것은 변한다. 계속 들고 나는 반복일 뿐이다.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다. ‘아닛짜(무상)‘을 경험하고 깨닫는 과정’ 이라고 고엔카는 말했다.

몸의 감각을 보는 것과 세상의 무상함을 깨닫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몸의 감각이 그냥 무상일 뿐이라면 내 등의 고통은 왜 이렇게 선명하고 사라지지도 않는 건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파사나의 핵심4일차 저녁 설법. 비파사나에 대한 조금 더 힌트를 얻었다. 비파사나의 핵심은 2가지다. ## 첫째, 몸 안의 아주 미묘한 감각을 느낀다. 어떤 감각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 바퀴씩 돌면 돌수록 정신이 예민해진다. 감각이 크고 거친 감각에서 미묘하고 세밀한 감각으로 바뀌어간다.

몸 전체를 관찰하지 않고 부분을 나누는 이유는 범위가 작으면 작을수록 미묘한 감각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부터 순서대로 하는 이유는 크고 강렬한 감각만 이리저리 쫓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손이나, 발가락, 얼굴 쪽에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는데, 팔 위쪽, 허벅지, 배 등에는 거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몸의 모든 부분에는 끊임없는 감각이 있다고 한다. 계속 관찰하다보면 느낄 수 있게 된다. (실제로 10일을 모두 끝날 때쯤에는 감각이 느껴지는 부위가 더 늘어났다. 신기.) 특히 평소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외부 감각(시각, 청각, 후각 등)이 아니라 내부 감각에 그렇게 집중해본 게 처음이어서 낯설었다.

고엔카 선생님은 이 감각의 끝까지 가면, 크고 덩어리진 감각들이 점점 녹아서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인간의 몸은 매우 작은 아원자입자로 이루어져있으며 결국 몸과 정신을 이루는 것은 그 아원자 입자의 떨림일 뿐인데, 그것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 둘째,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느낀 감각에 반응하지 않는다.우리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적 마음은 몸의 미묘한 내부 감각들을 모두 느끼고 있다. 비파사나 명상을 하는 것은 이런 감각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이다.

마음의 4가지 단계. 지각 - 인지 - 감각 - 반응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마음은 어떠한 사이클의 반복이다. 그 사이클은 인간이 외부의 감각과 접촉하고, 그것이 무엇이라고 인지하고, 몸에서 감각이 일어나고, 거기에 쾌/불쾌의 레이블을 붙이고, 거기에 대한 호오반응을 하는 것이다. (어려운 얘기이므로 나중에 추가로 설명하도록 하자)

핵심은 외부 자극을 바탕으로 몸에 어떠한 내부 감각이 일어나고, 거기에 따라서 내가 그것을 밀어내거나 가까이가는 식으로 자동 반응한다는 것이다. 비파사나는 내부 감각에 대한 자동반응을 끊는다. 무의식적 레벨에서 자동으로 일어나는 그 반응을 반대로 트레이닝한다.

비파사나를 하고 나면 확실히 마음이 느려진다. 마음이 둔해진다는 느낌. 외부 자극에 대해 강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1시간 동안 감각에 대한 반응을 막았기 때문에 반응 속도가 조금 느려지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맞아들어가는 느낌이 난다. 이 부분은 그동안 6년 가까이 명상을 하면서도 전혀 몰랐던 부분인데.. 굉장한 흥미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