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도전 VS 만족과 균형
무심히 책꽂이를 훑어보던 중이었다. 책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생각하는 미친놈>이라는 책이다.
어, 저거 내가 옛날에 되게 열심히 읽었던 책인데.
표지에는 대머리지만 똑똑하게 생긴 사람 한 명이 포지를 잡고 있다. 책을 열어본다. 와, 진짜 열심히 읽었네. 형광펜칠, 손으로 쓴 메모가 가득하다. 메모 내용을 읽어보니 10년 전 군대에 있을 때 읽었던 거 같다.
이 책은 박서원이라는 사람의 자전적 에세이다. 공부에 관심이 없어 항상 꼴등을 했고 대학도 억지로 가서 방황했다. 그러다 어느 날 ‘디자인’에 꽂혀서 20대 후반에 미대에 들어갔고, 미친 듯이 몰입해서 결국 광고 업계에서 최고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돌아보면 2010년대 초중반엔 ‘열정! 근성!! 도전!!!’을 외치는 책이 참 많았다. <젊은 구글러의 편지>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400일간의 김치 버스 세계일주> 같은 책들이 유행했다. (나만 읽었나?)
이때 책 쓰려면 열정으로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고, 독도나 김치 홍보하면서 세계 일주 한 번쯤은 해줘야 했다.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책이 20대 초반의 송범근을 사로잡고 있었던 어떤 내러티브의 상징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니컬하게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저런 책들을 무척 좋아했다.
겁 없이 도전하는 사람의 이야기.
크리에이티브로 세상을 정복한 이야기.
배낭 하나 메고 세상을 떠도는 이야기.
버킷리스트를 실제로 실천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았다. 나도 미쳐보고 싶었다. 나도 멋있게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거리감을 느낀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마라.. 쉼 없이 도전하라.. 이런 얘기를 요즘 냈으면 아마 욕 잔뜩 먹었겠지.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거나, 퇴사하고 경제적 자유를 찾으라거나,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고 외치는 시대니까.
교환학생, 창업, 연애, 직장인 생활… 지나오면서 조금씩 생겨난 새로운 나는 열정과 도전 얘기가 다소 부담스럽다. 굳이 부정까지 하는 건 아니지만. 길게 보면 균형과 만족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20대 초반의 나도 살고 있다. 그래서 기분이 묘했다. 머릿속에서 ‘이거 좋다’와 ‘이거 싫다’가 동시에 울리는 느낌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여전히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고, 무언가에 미쳐보고 싶고, 앞뒤 따지지 않고 도전해보고 싶고. 부족한 부분을 계속 채워나가고 싶고,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따져 묻고 싶다. 아직 난 무언가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거 같다. 여전히 마음속 한 곳에서는 이 책이 하는 말들에 공감한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30대의 나는 다르게 대꾸한다.
야, 네가 멋있다고 생각하던 그 사람도 지금은 그렇게 안 살 거야. 그런 걸 계속 추구해도 오래가진 못해. 세상일은 어느 정도 내 통제 바깥에 있기 마련이야.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 너무 부족한 점만 보지마. 명상하고 운동하고 연애하고 그런 것만 잘해도 행복이야.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느껴보란 말이야. 라고.
그냥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나도 결국 만족과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어른이 될까? 그렇게 되고 싶기도 하고, 안 되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