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부자가 된 친구 썰
저는 오래전에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에 몸을 담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비트코인이 2천만원을 찍고 유명해질 때 쯔음이니, 벌써 7-8년 전의 일이네요.
저는 암호화폐에 관한 책을 썼고, 학교에서 블록체인 학회도 했었고, 블록체인 러버들의 커뮤니티이자 코리빙 하우스에서 살기도 했으며,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블록체인 컨설팅 회사를 창업까지 했었습니다. 당시 업계에서 많은 친구/지인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 업계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었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사회의 통념을 벗어난 (긍정적) 돌아이들과 엄청난 돈을 굴리는 투자자부터, 희대의 사기꾼도 만나보았죠. (테라 대표 권도형씨와 같은 사무실도 썼었다는)
저는 코인판에 한 2년 정도 있다가 이탈했지만, 많은 친구들이 여전히 블록체인이 이룰 탈중앙화 혹은 라이프 체인징 머니의 한방을 꿈꾸며 그 업계에 남았습니다.
오늘 얘기하고 싶은 친구는 그 중 K군인데요. K군은 항상 이름을 날리는 사업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벤처경영학과를 다녔고, 경영대 학회도 했으며, 학생 시절에 학교 주변 메뉴 비교 서비스를 창업하기도 한 사람입니다.
휘몰아치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붐 속에서,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가가 되겠다는 야심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다 저와 친해지게 된 사람이었죠.
그는 항상 성공한 창업가들의 트위터/링크드인을 팔로우했고, 그 사람들이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지 알았고,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아는데 진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롤모델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는 블록체인 업계에 들어와 연거푸 쓰린 맛을 봤습니다. 공동창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소송까지 갔고, 직원들에게 밀린 월급을 자기 돈으로 갚아줬으며, 갚을 돈을 벌겠다고 취직한 회사도 그의 눈에 보기에는 블록체인 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해 사람들 등쳐먹는 회사였죠.
그 힘든 시기에 저는 가끔 K군의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그의 높은 추구미 대비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알았고, 그의 우울증이 깊은 수준까지 도졌다는 것도 알았거든요. 사람 하나 살려야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그가 힘들 때 이야기를 들어준 것 뿐이지만 그 덕에 약간의 ‘은인?’ 으로 취급되어 요즘도 생일 선물을 계속 챙김받고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 주제인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친구’를 보고 그가 떠올랐습니다. 이 형이 저한테 영향을 크게 미쳤던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건 그가 코인으로 벼락부자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K군은 테라 프로토콜 - a.k.a 루나 코인 - 의 초기 투자자였습니다. 2021년 테라는 엄청난 기세를 자랑하며 수백배 가격이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K군은 언젠가는 다시 창업을 하리라 꿈꾸며 일반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요. 루나에 투자한 덕분에 그는 대기업을 평생 다녀도 못 벌만한 돈을 한순간에 벌었습니다.
제가 안 사람 중에 코인으로 돈을 번 사람은 한트럭이긴 합니다만, 사실 다 많이 벌었다더라- 소문으로 듣는 거지. 진짜로 얼마 벌었는지 알 정도로 친한 사람은 이 형 정도가 유일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정확히 제 커리어의 저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2달 간 백수로 쉬면서 갑자기 개발자가 되겠다며 코딩 부트캠프를 지원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도 꽤나 자존감이 떨어져있던 시기였죠. 그런데 주변 지인들이 다 루나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것을 보니 (저도 사실 루나에 초기 투자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멘탈이 꽤나 흔들렸었습니다.
그는 포르쉐를 사고 평소 로망이었다며 한남더힐로 이사를 갔습니다. 저는 괜찮은 척 했고 K군한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이 29살에 백수 취준생으로서 좀 스트레스를 받았죠. 나는 뭐하고 사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K군이 저를 만나서 고민을 털어놓더군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주변 사람들은 ‘쓰리 디짓(=100억)‘인데 나는 그걸 못 찍어서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 근데 계속 근처까지 갔다가 떨어졌다가 하니까 진짜 죽도록 힘들다. 계속 잘 된 애들 SNS 보면서 스트레스 받는다’ 라는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묘하게도 그 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 ‘돈이 많다고 해서 꼭 행복하지 않다’는 교훈성의 얘기를 수없이 듣지 않으셨나요? 사실 내가 그렇게 돈이 많아본적이 없기 때문에 전혀 와닿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와 정말로 친한, 내가 밑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옆에서 지켜본 어떤 사람이, 수십억의 돈을 벌고서 저에게 ‘쓰리 디짓이 아니라서 죽도록 힘들다’ 라고 고민을 털어놓는 경험은 꽤나 강렬했습니다.
애초에 K군이 저와 엄청나게 배경이 다른 인간도 아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빨리 성공하고 싶은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게 어떤 커뮤니티의 썰이나 TV속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던 거죠.
전혀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그냥 이미지로 와닿았달까요? ‘돈이 행복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돈을 벌기 위해서 돈을 벌면 그 다음에 또 위를 쳐다보고 비교를 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죠. 무엇보다 저는 건강한 정신과 자존감이 돈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아마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을 트리거한 것이겠죠. 하지만 그 강렬한 경험 덕분에 이후로 제 인생의 우선순위를 좀 더 명확하게 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보다는 건강한 정신.
건강한 정신이 돈과 양립할 수 없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단단한 멘탈이 먼저라는 것이죠.
그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날은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경험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한번도 코인 부자가 된 친구들을 부러워한 적이 없던 거 같네요.
(왜 이 사건이 갑자기 떠올랐나 생각해보다가 급 깨달았습니다. 오늘 회사에서 연봉 조정 결과를 듣는 날이었네요 ㅋㅋㅋ 하..하하… 어쩐지 저 사건이 떠오르더라니 그냥 자기 방어였나..)
돈보다는 건강한 정신입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