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불안 얘기해도 될까요?

2025. 11. 18·published in 1일1글
  •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 누군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한다.
  • 할 것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고 충분히 빡세게 하지 않아서 자꾸 뒤쳐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
  • 쉬는 시간에도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 생산성을 내 효능감과 동일시해 나에 대한 셀프 비판으로 이어진다.
  • 그 비판 때문에 나를 더 몰아붙여서 지친다.

‘Productivity Guilt’라는 증상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말로 하면 생산성 강박? 이라라고 해야할까? 이 강박의 자매품으로는 정보를 끊임없이 습득하려하는 ‘인포매니아’, 끊임없이 성취를 찾아나서는 ‘성취 중독’ 등이 있다.

내가 꼭 글을 여러 개 써보고 싶은 주제다. 혹은 더 나아가서 이 주제로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도 있다.

왜냐? 내가 정확히 저 증상을 오랫동안 앓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늘 말하고 다녔다. 사실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좋아서 그렇게 말할 뿐이다. 진짜 목적은 좀 더 미묘하다.

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쓴다.

나는 그게 너무 재미있다. 굳이 매일 글을 쓰고, 언젠가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책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다. 사람들과 글을 통해서 공감하고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글쓰기란 단순히 기록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글을 공유하고 퍼뜨리는 것까지 포함한다.

왜 글을 쓰면 내가 원하는 주제로 얘기를 나눌 수 있냐고?

일상 생활에서 누군가가 나의 관심 주제에 대해서 진지한 대화를 거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내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 주제에 대해서 글을 여러편 쓰고, 혹은 책을 썼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나에게 ‘그 주제에 대한 생각’을 듣고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싶어한다. ‘어떤 주제’하면 그 사람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나는 예전에 블록체인에 관심이 있고 재밌어서 시리즈로 여러 편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재미있는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생산성 강박’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글을 쓰고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이 강박에 대한 ‘메타인지’가 올라가고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불안’에 대해 글을 쓰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불안, 두려움, 스트레스 같은 한 단어로 우리가 겪는 많은 고통을 요약한다. 하지만 사실 사람마다 그 불안의 뿌리와 모양, 무늬가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학력 콤플렉스’ ‘살찌는 것에 대한 불안’ 같은 한마디 묘사로는 그 불안이라는 녀석을 똑바로 보고 이해하기 어렵다.

또 우리가 대처를 어떻게 해야할까 얘기할 때 직접적인 해결책을 많이 얘기한다. ‘중요한 것에 우선순위화하세요’ ‘당신이 가치있다는 것을 믿으세요’ ‘자신에게 휴식을 주세요’. 하지만 사실 불안의 뿌리와 모양, 무늬를 모르면 사실 별로 효과가 없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나도 내가 생산성 강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 강박이 그 이상 인정하기는 부끄러워서 잘 말하지 않는 여러가지 증상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심지어 이런 생산성 강박이 왜곡된 시각에서 오고 있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우선순위를 매기라든지) 그런 감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 알고 있는 것과 극복? 아무렇지 않아지는 것 사이에는 큰 갭이 있다. 여전히 그 불안/두려움이라는 녀석은 내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고, 내 의식은 내 뇌에 대한 통제력이 별로 없다. 여전히 나는 이 입주자 녀석과 꽤나 공존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오히려 불안의 디테일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다보면 조금 다른 방식의 ‘극복’을 한다. ‘아 내가 이런 불안이 있고, 그 불안은 여기서부터 올라오는 것이고, 이런 것들과 연결이 되어있구나’ 하는 메타인지가 점점 높아진다. 불안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떨어진 별도의 대상으로 보게 된다. 그 불안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런 방식에서 오는 변화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