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인 아버지가 주유소 세차원으로 취직했던 썰

2025. 07. 28·published in 1일1글

우리 아버지는 꽤나 특이한 삶을 살아왔다. 아버지가 뭐하시는 분이냐고 하면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버지는 원래 작디작은 출판사의 사장이었다. 근데 자기가 좋아하는 옷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40대가 될 때 쯤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는 제목의 책이 유행했는데. 아버지는 그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

그리고 40대 초에 정말로 인생 이모작을 하겠다면서 정말로 회사를 때려쳤다. 정확히 말하면 그나마 이제 좀 회사답게 돌아가기 시작한 출판사의 사장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빠른 은퇴’를 했다. 인생 전반전을 뛰었으니 앞으로 후반전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겠다는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아버지는 사장 같은 일은 정말 안 어울리는 분이라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들 셋에 할머니까지 같이 사는 집의 가장이, 그런 결심을 실천에 옮기는 건 지금의 나보고 하래도 못할 거 같은데 아버지 세대의 분위기까지 고려해본다면 다시 돌아봐도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는 그 후로 굉장히 다양한 일을 했다. 대학원 공부, 클래식 기타 배우기, 사회복지 단체 이사, 집안일, 편찮으신 할머니 챙기기, 책 쓰기, 연극 동호회, 사물놀이 동호회, 장애인식 개선 강사 등등… 직장을 다니는 어머니 대신 주부를 하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하면서 사신다.

우리 아버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남들 눈치보느라 인생 재미없게 사는 것이다. 아버지는 세상의 기준에 얽매이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평생직장과 가장의 무게가 상식인 아버지 세대에, 40대에 은퇴하고 주부 생활을 하는 것부터가 그런 성격의 발현 아니겠는가. 사회적인 체면과 ‘엄근진’보다는 눈치 안보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그야말로 노마드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반면 엄마는 자기 영역을 정성스레 가꾸는 것을 좋아하며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아온 ‘가드너’ 스타일인데. 이 두분의 대비되는 스타일 또한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다.

최근 자식들이 다 밥벌이를 하게 되자 어머니와 아버지의 최대 고민이 각각 생겼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반대다.

엄마: 은퇴 후에 혹시 모를 의료비나 나중에 자식들을 위한 돈을 어떻게 잘 안전하게 지키고 불릴까?

아빠: 지금까까지 모은 돈 죽을 때까지 어떻게 다 재미있고 알차게 쓸까?

요즘도 집에 가면 엄마한테 왜 자꾸 저축을 하냐며 툴툴거리고,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건강할 때 여행을 갈까 맨날 그 고민만 하신다.

남들 눈치를 안 보는 성격 덕분에 옆에 있는 사람 (엄마나 나나 동생)은 항상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체면과 눈치를 챙겨하는 상황에서는 아버지가 무슨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기 떄문이다. 가장 최근에는 상견례가 그랬는데. 다같이 모여서 아버지한테 ‘이런 거는 하지 마세요’ 교육을 했다. 아버지가 ‘쩝..’ 하면서 아쉬워했던 것이 기억난다. (실제로 그 행동을 하려고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누구보다 정신이 건강하고 행복하신 분이기도 하다. 진짜 우리 아버지처럼 멘탈이 건강한 사람은 못 봤다. 엄청난 둔감함으로 모든 기분 안 좋은 것은 쉽게 까먹는다. (그 덕분에 눈치와 센스가 0%라는 게 단점이다.)

어쨌든 늘 현재를 즐겁게 산다. 요즘 사람에 비유하자면 ‘기안84’다.

아버지 얘기를 하려니 할말이 많지만 한 가지 에피소드만 더 풀고 마무리해보려 한다.

벌써 7년 전의 얘기다.

오랜만에 집에 가서 가족끼리 얘기를 하던 중에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엥?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취업을 하셨다고?

“취업? 어디요?” 내가 물었다.

“그 너 할머니 계신 요양원 알지? 그 옆에 주유소 하나 있잖아. 거기서 세차원을 뽑는다는 거야. 그거 보고 지원했는데 붙어가지고 이번 주부터 일하고 있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으잉? 주유소 세차원이요?” 나랑 동생이 동시에 놀랐다.

“우리 집이 이렇게 어려웠어? 제가 과외 열심히 할게요.” 동생이 농담을 던졌다.

“그런 거 아니고, 아빠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버지는 평소 항상 땀 흘려 노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고 한다. 또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알바를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재미있으시다는 거였다.

“게다가 내가 낮에 비는 시간이랑 딱 맞으니 얼마나 좋냐.” 아버지가 덧붙였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대기업 다니다가 명예퇴직을 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재취업을 알아보는 데 잘 안돼서 굉장히 우울해하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 친구를 만나서 “난 세차원도 하는데 뭐 어떠냐”라고 했더니 “야 그래도 보는 눈이 있지, 나는 너처럼은 못 산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헤어지셨는데, 아버지는 친구의 그런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고, 떳떳하면 된 거지. 못할 게 뭐가 있어? 이런 걸 보면 사람들이 그 나이가 되어서도 세상의 시선에 너무 맞춰서 사는 거야. 사실 내가 남들이 보기에는 좀 이상한 걸 수도 있어. 그렇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전혀 후회가 없고, 지금 정말 즐거워. 세차 알바도 고되긴 하지만 아주 재미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완벽하신 분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도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건 분명하다고.

아버지의 삶을 옆에서 보아왔지만, 여태까지 나는 가족이니까, 옛날부터 봐왔으니까 별 생각이 없었는데, 아버지의 취업 소식을 들은 그날 이후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그 후로 아버지는 그 아르바이트를 무려 만 5년을 꽉 채우고 퇴직했다.

‘남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신조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신조에 나도 꽤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내 20대를 1마디로 요약하자면 ‘덕업일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정석’과 ‘체면’보다는 남들이 이해 못하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에 항상 내 패를 걸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1년마다 한번씩 직업을 바꾸던 시절에 정말 너는 어떻게 그렇게 겁이 없니? 라고 물어보셨다. 아무래도 그 겁없음은 아버지에서부터 온 게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