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선명하게
정말로 부끄러워서 쓰고 싶지 않지만, 오늘은 여기에 대해 쓸 수 밖에 없겠습니다. 저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 목록에 또 하나를 추가했기 때문입니다.
이 실수 목록에는 2월에 GS편의점에서 충전할 수 있는 기능을 오픈하다가 URL을 잘못 넣는 어이없는 실수로 CU 충전 화면에서 버튼을 눌러도 같은 화면을 뱅글뱅글 돌게 미로를 만든 것과, 3월에 자기 결혼식에 자기 구두를 깜빡하고 놓고와서 운동화신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뻔했으나 장인장모님한테 부탁하여 갖다달라고 한 부끄러운 일 등이 있습니다. 이 리스트는 참으로 다시 보고 싶지 않은데, 오늘 이불킥 하고 싶은 실수를 하나 더 추가하고 말았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는 이번주 회사 앱 배포를 맡았는데요. (참고 - 릴마를 아시나요?) 사실 별로 엄청나게 할 것도 없습니다. 다 자동화되어있거든요. 그 자동화가 잘 돌아가는지, 빠진 것은 없는지 그냥 잘 지켜보고 챙기기만 하면됩니다.
어제까지는 아무 일도 없어서 너무나 럭키했습니다. (럭키하다고 말하면 플래그가 될까 말은 못했습니다.) 목요일에 모든 테스트가 끝나고 이제 앱스토어에 심사제출만 하면 되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주 자만하고 말았습니다. 아휴 별거 없네. easy~ 이러면서, 신나게 어젯밤에 팀 회식을 갔습니다.
아니 어느새 12시가 넘어버렸습니다. 제출 버튼을 진작에 눌렀어야 하는데.. 하면서 심사제출 버튼을 눌렀습니다. ‘어차피 심사제출을 하면 내일 낮에나 심사가 끝나겠지?’ 하고 이미 취기도 올라왔겠다, 저는 슬랙과 신경을 함께 꺼버렸습니다.
하지만 심사 제출 버튼에서 에러가 나서 실패했다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중요한 건 제가 그걸 못보고 꺼버렸다는 겁니다.
다음날 심사제출을 기다리고 있던 QA 팀 분들은 당황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심사제출을 하기 전에 최종 테스트를 하셔야 되기 때문에 다들 출근해서 기다리고 계셨는데 말이죠. (그것을 저는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금요일이라 테스트하고 빨리 퇴근하셔야 하는데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요.
그래서 저를 몇번이나 멘션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쿨쿨 자고 있었던 갑니다.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반응까지 없자 결국 저희 챕터 전체를 멘션하셨습니다. 그러자 다른 분들이 뭔가 잘못된 거 같다며 심사제출을 대신 해주셨고요. 저는 그 지경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습니다. 스레드를 보는 순간 소름이 좌악 돋았죠.
네, 아무튼 그렇게 저는 어이없는 실수로 10여 명의 사람들의 시간을 허비했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그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술을 먹기 전에 제출 버튼을 눌렀더라면, 하다못해 실행하고 나서 한번이라도 확인을 했더라면, 하다못해 슬랙 알림이라도 켜놨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계속 해서 스쳐서 멍했습니다.
그 와중에 이 실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변명을 마구 짜내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한테 뭐라고 말해야하나. 회식하느라 바빴어요? 어휴 말도 안 되는…
그냥 제가 방심한 것밖에 맞는 설명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저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일단 거듭 사과하고 수습을 했습니다. 이미 프로세스는 시작되었고 이건 2-3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수습이라고는, 기다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어깨는 힘이 들어가있고, 온몸에는 긴장이 들어가있었습니다. 어제 먹은 막걸리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고, 배가 고팠지만 뭔가를 먹기도 싫었습니다. 한 1시간 동안 심사제출이 돌아가는 대시보드를 멍하니 보면서, 저에 대한 화를 삭였습니다. 지금 이래봤자 뭐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말이죠.
엄청난 지각을 하고 나서 버스에 타 본적이 있으신가요. 이미 버스에서 내가 뭘한들 도착시간은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버스에서 내가 ‘왜 늦게 일어났을까’ ‘도대체 오늘 왜 이렇게 막히는 걸까’ 머리를 굴리며 내내 초조함과 긴장을 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대충 그런 상태였던 거 같습니다.
조금 있다가 방에서 나와서 정신을 좀 차렸습니다. 여전히 기분은 굉장히 안 좋았지만. 받아들여야지. 이제부터 오늘의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시 할 일을 했습니다.
몇 시간 뒤에 저한테 카톡이 하나 왔습니다. 제가 사업하는 친구에게 작게 돈을 투자한 게 있는데. 그 사업에서 실수가 있어 크게 손해를 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갈하게 정리한 메시지에 그렇지 못한 내용이었습니다. 얼마나 혼자 스트레스를 받고 저한테 말하기 두려워했을지 느껴졌습니다.
사실 이 친구가 비슷한 실수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돈이 걱정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솔직히 약간 실망할 수 밖에 없긴 했습니다. 그걸 굳이 한번 더 곱씹어 주어서 뭐하겠습니까. 게다가 제가 뭐 그렇게 잘한 게 있다고 (지금 써놓고 보니 아무런 관련은 없지만 나도 잘한 게 없다는 생각을 몇시간 전에는 했습니다.)
다만 친구가 자신의 실수라고 반복해서 계속 말하는 점에서, 그래도 기본적인 신뢰가 전혀 깎이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최악은 실수를 인정도 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나라고 뭐 다른가, 라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이 재미도 없는 실수 이야기를, 굳이 굳이 매글프에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명하게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겨둬야 할 거 같아서요. 저의 실수는 항상 ‘방심’이었기 떄문에, 이렇게 40분을 들여서 선명하게 남겨둬야 실수를 반복 안 할 거 같았습니다.